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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서핑 :: 사연

피씨방 매니져와 동거

by 애니웹 201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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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시방에서 만났다. 나는 피시방에서 알바를 했고 그는 피시방 매니저였다.
 

그는 처음에 나보다 열 살이 많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밥을 먹자고 했고 우리는 친해졌다. 촌 동네의 피시방에서 일하면서 그나 나나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서로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다. 나는 공허한 상태였고 그와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도 가졌다. 내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중매결혼을 한다면 꼭 이런 기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가 아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대와 고만고만하게 정을 가지고 사는 것. 너무 평범하고 무난해서 누가 봐도 ‘이런 남자가 좋아’라고 말할 것 같았다. 언제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무난하고 흔한 남자. 그런데 그는 보기보다 무난한 남자가 아니었다.
 

매니저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남자였고 담배는 많이 피워서 항상 냄새가 났다.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를 때리거나 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분노를 주체 못해서 문을 부수거나 의자를 발로 찼을 때는 꼴불견이었다. 그에게서 어떤 남성적인 매력이나 사랑을 느낄 수 없었고  오누이 같은 정만 느꼈다. 나는 매니저와 사 개월을 살았다.

 
처음에 음식을 내가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하게 되었는데 그는 처음 하는 요리가 재미있다고 했다. 매니저는 어머니가 늦게 얻은 아들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아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심지어 아버지가 병중일 때 자신을 가졌단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자 동네에서 노산모상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그 이후 어머니 밑에서 귀하게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베트남 참전 용사였기 때문에 매달 연금을 받았고 대학에 갈 때도 혜택을 받았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그런지 유난히 병약했는데 그래서 더욱 어머니의 걱정과 보살핌을 받았다. 어머니는 툭하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학교에 와서 선생님에게 몸이 병약한 아들에게 특별히 신경써달라 당부를 하고 갔다. 남편이 없는 여자에게 하나 남은 아들은 금지옥엽이고 위에 누나 셋이 일찍 죽었던 탓이리라.

 
"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는게 엄청 싫었어. 우리 엄만 학교 올 때 항상 한복을 입고 왔거든. 그래서 애들이 '야 니네 엄마 왔다.'라고 말할 때마다 부끄러웠어. 제발 학교에 오지 말라고 그래도 엄마는 걸핏하면 찾아왔어."


마흔 넘어서도 아들을 욕심냈던 여자를 어머니로 두었다보니 그는 부엌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나와 함께 산 이후로 음식을 처음 만들었다.


“난 아들이지만 아들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엄마 말이 남자는 부엌에 절대 들어오면 안된대. 꼬추 떨어진다고. 근데 나 요리 잘하지 않아? 나의 재능을 발견했어 낄낄."


매니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발 공장에서 잠시 일하다가 공무원 준비를 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공부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게 나이를 속였기 때문이다. 공부를 위해 절에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없는 절이 싫어서 하숙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것이 아마 시험에 붙지 못한 이유리라.


그는 명품을 좋아하는 남자다. 대학시절부터 명품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돌체 앤 가바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왜 명품이 좋은가 하면 그것을 가졌을 때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좋다고 했다. 한번은 500만원짜리 시계를 찼는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명품 시계를 갖기 위해 카드빚을 졌는데 그것을 갚지 못해서 독촉전화가 왔고 그 와중에 친구의 보증을 서준 것도 잘못 되어 생전 처음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돈을 받기 위해 친구를 찾았지만 친구는 종적을 감추었고 그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가망이 없다는걸 안 그는 돈 받는 것을 포기했고 후에 모든 상황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빚을 갚아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차 사고를 내서 어머니에게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을 압수당하고 귀양 겸 공무원 준비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공무원 시험은 몇 년 간 준비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어느 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일해보지 않겠냐는 사장의 말에 잠시 일하게 된 게 벌써 3년째라고. 그러다 나를 만났다.


“그 보증선 친구는 어떻게 되었어요?”


“지금도 연락 안되. 그 때 사라지고 아무도 걔 소식을 모른다. 그 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용서가 되더라. 지금 만나면 사과나 받고 다시 잘 지내고 싶어.”


그의 엄마가 돈을 갚아주지 않았어도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차에도 관심이 많은데 외제차를 산다면 유료 주차장에 관리할꺼야. 전에 매장에 전화를 한 적이 있어. 직원이 쩔쩔 매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는데 스릴을 느꼈어."
 

할 말 없는 대목이다.
 

"엄마가 내게 횟집을 물려주고 싶어하는데 난 횟집 하기 싫어. 엄마가 횟집이랑 아파트랑 재산을 물려줄 예정인데 그러면 나는 횟집을 처분하고 와인바를 차리고 싶어."

 
"그 돈으로 명품살거예요?"

 
"몇개는 사도 되겠지?"

 
그 때까지만 해도 그저 개인의 취향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는 피시방에서도 틈틈히 명품사이트를 들여다보거나 차를 구경했다. 그게 취미인 듯 했다.


그의 열등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전 마트에 갔었어. 근데 카운터에 있는 아줌마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 매장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그 때까지도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래서 왜 사람을 쳐다보냐고 물으니까 아줌마가 안쳐다봤다고 하는 거야. 내가 들고 있던 우유를 바닥에 던지면서 당장 사장 나오라고 했지. 사장은 아니고 직급이 높은 듯한 남자가 나왔는데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그 사람이 굽신거리면서 죄송하다고 하더라고. 우유도 공짜로 하나 더 줬어. 그 이후에도 그 마트 가는데 그 아줌마 내가 오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다. 낄낄"


“오늘 사모랑 싸웠어. 사모가 애 본다고 교대시간에 늦게 나오는데 늘 미안하다는 말도 없어. 근데 화장실 청소가 덜 되었다고 투덜대는 거야. 그래서 나도 빈정이 상했지.


아줌마들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계속 하기에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 씨발’ 이라고 했는데 사모가 놀라더라고. 그러곤 나와버렸어."


“오늘은 피시방에서 알바생애랑 치킨을 시켜먹었는데 내가 전화로 주문하면서 사장님, 소스 하나 보내주세요. 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어. 그런데 치킨이 왔는데 소스가 없는 거야. 그래서 전화해서 사장님, 소스가 안 왔는데요? 라고 물었더니 ‘아 그거 대충 좀 드이소.’하면서 신경질을 내는 거야. 그래서 또 욱했지.”


“저번에 엄마랑 어디 갔었는데 안내데스크에 있는 여자가 되게 불친절한 거야.


엄마가 묻는데도 대답해주기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말하고. 집에 와서 회사번호 알아내 그 여자에게 전화를 했어. 그래서 욕을 했지. 심지어는 내가 ‘보지에 맥주병을 박아버린다.’라고 까지 했어. 그랬더니 그 여자가 당황해서 아무 말을 못하는 거야. 낄낄”

 
그는 나이 어린 나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토로했고 나는 매번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우리 집은 남자들은 단명해. 아버지도 그렇고. 삼촌도 그렇고, 여자는 장수하는데 남자는 보통 40을 못 넘기고 죽어. 우리 아부지도 48세에 돌아가셨거든. 그렇다보니 나도 가정 꾸릴 욕심은 없어. 나도 오래 못살 것 같거든. 전에 채팅에서 브라질 축제에 갔다온 남자의 경험담을 들었어. 거기 가면 축제 참가자들과 섹스를 할 수 있는데 단 콘돔을 착용해야 돼. 그러면 원하는 사람이랑 섹스를 해도 좋다는 거야. 거기 갔다 온 남자가 백마도 타고 흑마도 탔다고 하는데 정말 부러웠어. 나도 죽기 전에 거기서 백마도 타고 흑마도 타보고 싶어.”

 
그는 그 이후에도 이 얘기를 하면서 소원이라고 했다. 정말 이게 소원인 듯 했다.


어느 날은  매니저가 정말 재밌는 일이라면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오늘 어떤 손님이 와서 USB를 주면서 이걸 회사로 보내달라는거야. 자기가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면서. 그래서 열어봤더니 여자의 나체사진이 잔뜩 나오는 거야.

 
아마 USB를 잘못 들고 온 모양이더라고. 이걸 회사로 보내드리라고요? 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걸 회사로 보냈어. 난 그냥 시키는대로 한거야 낄낄낄"
 

"그 사람이 잘못 들고 온걸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했어요? 그 사람은 컴퓨터를 몰라서 부탁한 거잖아요. 그 사람이 얼마나 곤란해지겠어요?"


"난 시키는대로 한거야. 자기가 보내라고 그랬다고 낄낄"
 

나는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라, 그게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매니져는 웃음을 지우며 '에이 너 혼자 왜 심각하냐'하며 기분 나빠했다.

 
명절 날 그의 엄마가 우리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그와 계속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개의치 않고 빈껍데기처럼 살고 있었다. 내 인생은 더 이상 기댈 곳도 기대할 것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두번 찾아왔지만 항상 나 혼자 있을 때였다. 매니저가 있는 줄 알고 몰래 찾아온 거였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번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지쳐 돌아갔다. 그 이후 나는 그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동거 4개월만의 일이었다. 그와도 인연이 없었던 것이리라.


그 후 우리는 서로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 되었고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으나 그 후 일년동안 연락을 하며 교류하며 지냈다.

 
나는 그 후 여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와 떨어진 이후 그에게서 성욕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왔는데 하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남자의 주기적인 성욕이 징그러웠다. 여관 아줌마가 방을 청소 중이라 방에 들어갈 수 없다고 둘러댄 나는 그와 밥을 먹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 후에도 그와 섹스를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만났을 때 무심결에 그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발급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새 주민증이 들어있었다. 그의 민증을 보는 순간

 
내가 알던 나이가 아니었다. 그는 나와 열살 차이가 났었는데 주민증의 나이는 그보다 8살이 더 많았다. 18살이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매니저의 나이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 정말 불쌍한 사람. 정말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애기같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구나. 애기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래서 저런 남자들은 어리고 순진한 여자만 노리는구나.

 
가장 기본적인 정보마저 속여야 했던, 그의 열등감과, 나이를 저렇게 먹어도 초라한 그가 불쌍해서 그만 눈물이 났다.


당황한 그는 "넌 왜 남의 걸 함부로 보냐, 내 물건 마음대로 보지 마라." 라고 했다.


내가 그 다음에 두번째 동거를 하기 직전까지 우리는 연락만 하고 지내다 서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나, 그나 후련했다

 

 

출처 : 네이버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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